🧾 들어가며
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거리의 우편함.
빨간색이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.
하지만, 이 빨간색이 영원히 빨간색으로 확정된 것은
놀랍게도 1898년, 어느 소규모 회의의 결정 때문이었습니다.
이 글은 그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, 주목할 이유도 없는,
심지어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조차 회의의 존재를 잊었을 1898년 우편함 색상 유지 위원회에 대해 말합니다.
사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신다면… 당신은 정말로 특별한 사람입니다.
왜냐하면 아무도 여기까지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.
🔍 배경: 녹색이었던 우편함
초기 영국의 우편함은 녹색이었습니다.
그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. 자연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.
하지만 뜻밖의 문제가 발생합니다.
“나무 사이에 숨은 우편함이 보이지 않아요.”
– 1871년, 사우샘프턴 주민 민원서 발췌
이 문제는 우편물 수거 지연, 배달 오류,
우편함 앞에서 괜히 두리번거리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사소한 사건들로 이어졌습니다.
이에 1874년부터 빨간색 도색 정책이 시범 도입되었고,
1880년대에는 점점 전국으로 확대되었죠.
🏛️ 1898년, 다시 도는 논의
빨간색이 자리잡은 듯했지만,
1898년 5월, 런던 북부의 한 자치회관에서 한 통의 민원이 접수됩니다.
“아이들이 빨간 우편함을 보고 놀랍니다.
회색으로 바꿔주세요.”
– 이니셜 G.M. (이름은 기록에 없음)
이 한 줄짜리 민원을 계기로,
‘우편공공시설 시각 조정 소위원회’라는 이름의 위원회가 구성됩니다.
총 5명. 심지어 그중 한 명은 투표권이 없었습니다.
🪑 위원회 구성 (대단한 건 없습니다)
이름 | 직함 | 역할 |
---|---|---|
A. J. Pennington | 위원장 | 결정권자 |
George H. Littlemore | 서기관 | 회의록 작성 |
Thomas Bellweather | 우편정비 담당관 | 의견만 제시 |
Mrs. Edna Cromley | 시각 디자인 관찰 위원 | 발언만 함 |
John R. Smithe | 북런던 시민 대표 | 회색 지지 |
이들은 6월부터 7월까지 세 번의 회의를 엽니다.
📅 회의록 정리
제1차 회의 (1898.06.04)
- 주요 안건: “빨간 우편함은 과도한 시각 자극인가?”
- 논의 사항:
- Thomas: “빨간색은 멀리서 잘 보입니다.”
- Edna: “하지만 미학적으로는 단조롭습니다.”
- Pennington: “어차피 국민은 아무 색이나 익숙해집니다.”
- 결론: 보류
제2차 회의 (1898.06.17)
- 우체국 내부 보고서 발표: “빨간색 도색 우편함은 눈에 잘 띄며, 우편 사고율이 0.03% 감소했습니다.”
- 시민 대표 John R. Smithe는 “회색이 더 우아하다”고 주장했지만 근거는 없음
- Pennington의 결정적 멘트:
“우아함은 우편 시스템의 기능적 목적에 기여하지 않는다.”
- 결론: 회색 제안은 임시 보류
제3차 회의 (1898.07.01)
- Edna Cromley가 우편함을 종이로 오려 붙여본 시각 실험 결과 발표
- 아무도 관심 없음
- Pennington:
“결론적으로, 이 위원회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.”
- 결론: 우편함은 빨간색을 유지한다
🧾 회의의 실질적 영향
- 정책 변경 없음
- 시민 반응 없음
- 언론 보도 없음
- 회의록은 왕립기록보관소 27층 맨 구석 서랍에서 먼지 속에 보존됨
🧠 결론: 바뀐 것은 없다
이 위원회는 어떤 변화도 만들지 못했습니다.
우편함은 빨간색이고, 지금도 빨간색입니다.
1898년 회의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며,
그렇다고 해서 기억할 이유도 없습니다.
🙇 마무리하며
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…
정말로 진심으로 감탄합니다.
이처럼 무의미한 역사적 순간을 이해하려 애쓴 당신께 박수를 보냅니다. 👏
다음에 다룰 주제는 1932년 독일 우유병 뚜껑 디자인 변경안의 부결 사유입니다.
(기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)